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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속의 창

중요

중요한 것은 호랑이도 곰도 아니요.

정쟁도 경제도 아니오.



중요한 것은 극심한 회오리 가운데 놓여진 우리 한민족이

서로와 서로를 존중하고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서로 모아지고 승화되는 것이요.



그 승화는 곰의 온순함과 범의 위엄으로 둘러싸여

외유내강의 새로운 5만년 한민족의 장엄한 역사를 이어갈

우리 한민족의 기운이자 기치가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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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호랑이 자손들인가?





단군의 어머니는 곰인가? 호랑이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틀리는 사람이 없이 누구나 곰이라고 답할 것이다. 곰과 호랑이가 환웅천황으로부터 쑥과 마늘을 받고 동굴에 들어갔다가 성질이 급한 호랑이가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뛰쳐나갔고 곰은 이를 견디어 인간으로 변해 단군을 낳았다고 삼국유사가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옛날 그림들을 보면 곰과 같이 있는 그림은 하나도 없고 온통 호랑이만 등장하는가? 민화를 보면 호랑이만 나오고 산신령도 호랑이하고만 같이 앉아 있다. 단군의 어머니가 원래에 곰이었다면 응당 어떤 형태로든 곰과 관련된 설화나 그림이 있어야 할텐데 왜 곰은 없고 호랑이만 나오는가?

이런 의문과 함께 기존의 신화와 전설을 되짚어 본 서울대 조현설 교수는 <한국불교전서> 조선시대 편에 실려 있는 ‘묘향산지(妙香山誌)’의 단군신화에 주목하게 됐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 살았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와 교통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그가 요 임금과 같은 해에 나라를 세워 우리 동방의 군장(君長)이 되었다.”




<삼국유사>와 비슷한 얼개로 가다가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단군을 낳는다. 도대체 이 신화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 여기서는 환웅이 백호와 결혼하는가? 곰과 범, 대체 어느 쪽이 진짜 단군의 어미인가? 이 낯선 단군신화가 우리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같이 호랑이와 결혼하는 신화가 우리 민족에게 더 있다는 사실이다. 손진태씨가 도쿄에서 간행한 <조선민담집>(1930)을 보면 남매혼 홍수신화의 변이형으로 보이는 자료가 실려 있는데, 이 홍수신화의 오누이는 일반형과는 달리 결혼을 못하고 늙어간다. 그때 어디선가 호랑이가 사내 하나를 데리고 와서 누이와 결혼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인류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보통의 홍수신화에서는 남매사이에서 애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신화는 근친상간을 피하고 싶은 심리에서 좀 다른 변종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는데, 왜 하필 호랑이가 남자를 데리고 왔다는 상황이 설정됐느냐 하는 점이 재미있지 않은가? 이 신화를 보면 호랑이가 인류를 다시 창조한 창조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신화나 전설을 들여다보면 역시 곰보다는 호랑이가 훨씬 많이 나온다.




신라 원성왕대에 김현이란 청년이 무르익은 봄날 밤에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다가 한 처녀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게 됐는데, 처녀를 따라 서산에 있는 초당에 가보니 세 명의 오빠가 돌아오는데, 모두 범이다. 오빠 범들이 사람과 가축을 너무 해쳐서 벌을 받게 되니, 처녀호랑이가 자기 스스로 죄를 대신 받기로 결심하고 기왕이면 정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은 낭군의 손에 죽기를 원한다. 다음날 성 안에 맹호가 들어와 날뛰니 왕은 호랑이를 물리칠 용사를 찾는다. 김현은 칼을 들고 숲에 들어가 보니 전날 밤 자신이 만난 그 처녀였다. 처녀는 낭군 앞에서 죽으면서 오빠들의 죄를 대신해 용서받을 수 있었고, 또 호랑이를 물리친 공으로 낭군이 높은 벼슬을 받도록 해주었다. 김현은 나중에 죽은 호랑이를 위해서 호원사(虎願寺)라는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도 호랑이의 정기를 받았다. 고려사에 의하면 옛날 호경(虎景)이란 사람이 개성 송악산 골짜기에 살았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갔다가 날이 저물어 잠을 자려고 굴속에 들어가 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굴 앞에서 으르렁거리고 있길래 호경이란 사람이 혼자서 호랑이와 싸우러나간다. 그 순간 굴이 무너져 굴속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몰사하고 호랑이는 간데 없이 사라져버린다. 호경이 마을로 돌아와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고 산신에 제사를 올리자, 호신(虎神)이 나타나서 자기는 이산을 지키는 과부라고 하면서 호경과 부부가 되어 신정(神政)을 다스리고 싶다며 호경을 데리고 사라져버린다. 마을사람들이 호경을 대왕으로 봉하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는데, 그 뒤 호경이 꿈에 옛 부인에게 나타나 동침한 뒤에 아들을 낳으니 이가 곧 왕건의 선조인 강충(康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조선조 건국설화로도 이어져 태조 이성계의 조부인 목조(穆祖)와 호랑이와의 이야기가 호경의 이야기와 아주 흡사한 형태로 만들어져 청구기화(靑丘奇話)라는 책에 실려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왕건의 선조는 개성에 오래 산 것이 아니라 중국 땅에서 산 것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왕건의 호랑이설화는 나중에 지어 붙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설화가 고려와 조선 두 왕조 건국자의 선조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우리민족이 그만큼 최고지도자인 왕은 호랑이와 같은 신령스런 영물로부터 점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이 이야기에서는 비록 인격화되기는 했지만 산신인 호랑이가 조상신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창조신 호랑이가 조상신으로도 우리 신화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북지역 민족가운데 시조신화에 호랑이가 나오는 경우는 많다고 한다. 아무르강 하류 하바로브스크 부근에 거주하는 아크스카라족에도 호랑이 시조신화가 있다고 한다. 언젠가 한 처녀가 산 속에서 호랑이와 사귀어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아크스카라’라고 했다. 호랑이의 소생이란 뜻이다. 아크스카라는 자라서 뛰어난 사냥꾼이 되었고, 장가를 들어 자식을 많이 낳아 아크스카라라는 한 씨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 아크스카라족의 신화는 우리 신화와 대비되고 있다. 이 씨족은 곰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는 에벤키족의 한 지파라고 한다. 모족인 에벤키족은 곰이 시조로 되고 있고, 그 지파인 아크스카라족은 호랑이 시조신화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시조로서 곰이냐 호랑이냐를 따진다면 호랑이가 시조라고 해서 안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연구한 서울대 조현설 교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삼국유사> 중심의 전승에서는 호랑이가 금기를 깬 패배자이지만 <묘향산지>의 단군신화에서는 호랑이가 환웅과 짝이 되어 단군을 낳는 승리자다. 게다가 두 단군신화를 견주어 보면 더 오래된 것은, 신화의 형태로 보아 <묘향산지> 쪽이다. <삼국유사>에 보이는 ‘곰의 인간되기’에는 이미 동물신보다 후대에 발생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인격신 개념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된 단군신화의 백호가 단군의 진짜 어미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단군의 어미가 곰이냐 호랑이냐를 굳이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곰이 이기고 호랑이가 졌다는 승패를 따지거나, 곰이 호랑이보다도 더 낫다는 뜻으로 풀이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단군의 어미를 곰이라고 상정할 때에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우리조상들은 곰이 갖고있는 덕목을 건국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곰을 인간으로 화신 하도록 했으며, 그 말은 곰의 덕목이 곧 우리민족의 심성 속으로 이미 들어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단군신화이후 이미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곰은 우리의 전설이나 설화 속에서 동물로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화되지 못한 호랑이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건국신화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민족과 한가족과 같이 친밀한 상태에서 호랑이는 계속 인간이 되기를 원했고, 또 인간으로 화신해서 결혼을 했고, 될 수 있으면 인간에게 선을 베푸는 동물로(아마도 달순이와 별순이의 전설 이후 나쁜 마음을 먹었던 호랑이는 이미 하늘에 올라가려다 수수밭에 떨어져서 그의 피로 수숫대를 붉게 물들이고 순직했기 때문일까) 그려져 왔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험스런 동물로서, 우리민족에게 가장 많은 전설이나 설화를 제공한 동물로서, 외경의 대상으로서, 생명의 구원자로서, 그 의연한 품격을 잃지 않고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일설에는 사람이 되지 못한 그 호랑이의 뒷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되지 못한 호랑이는 나중에 단군을 따라서 구월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산신으로 화한 단군으로부터 영약을 받아 마시게 되고 그리해서 호랑이는 산신령의 옆에서 산신령을 모시면서 그의 시종과 전령의 역을 맡는다는 이야기이다. 곰과 호랑이의 신화를 기록한 중국의 역사서 위서(魏書: 陳壽가 편찬한 三國志가운데 위나라와 관련된 역사를 기록한 책)에는 단군이 구월산에서 산신으로 화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산신탱화(山神幀畵)에는 호랑이가 영약을 받아 마시며 세례를 받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곰이 우리들의 성품의 일부로 용해되어 버렸다면 호랑이는 이처럼 버젓이 살아서 산신령, 또는 산신령의 사자로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호랑이 이야기인가?





그것은 최근 들어 정말로 우리 조상이 호랑이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부쩍 들어서이다. 해방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들은 유난히 대립이 많았다.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이 없지만 조선시대 후기의 극심한 당파싸움에다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이다, 전쟁이다, 그리고 좌우대립에다 진보 보수대립에다, 친미 반미대립 등등 대립이 끊이지 않는다. 은근과 끈기라는 곰의 속성으로 상징되는 우리 민족의 심성은 어디 가고 허구한 날 물고 뜯고 싸우는 호랑이의 속성이 우리 사회를 특징짓고 있지 않는가? 무슨 일이든 차분히 따져보며 순리적으로 논의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만 수가 틀리면 주먹을 쥐고 머리를 깎고 뛰쳐나온다. 그것은 용맹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헛된 용맹이다. 용맹, 만용만이 판치는 세상이 계속되니까 우리 민족의 심성이 달라져 보인다.






정말 우리 민족의 시조는 곰이 아니라 호랑이인가? 아니 정말로 옛날의 호랑이는 신선과 함께하는 영물이어서 그렇게 맥없이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는데, 왜 우리들은 그런가? 그런 의미에서 호랑이가 우리 조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우리 몸 속에 호랑이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많다. 별 것 아닌데도 남의 말을 들어주지는 않고 소리부터 지르려 하고 뭣하면 부수려고 하니 과연 우리들은 누구인가?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자 경제대국인 한국, 아직도 정쟁은 전쟁수준이다. 21세기 한국민들에게는 정녕코 호랑이 피가 흐르는 것인가?




-KBS 이동식 기자 칼럼에서 -




- 2005년 5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