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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속의 창

피서

더위를 피하는 것이 피서라면 개인적으로는 바다나 산 보다는 방콕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에 저번주 금토일을 피서 삼아 동해 주문진 해수욕장을 다녀왔다.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찾은 그 곳은 3년전 겨울 낙산을 찾으며 제대 후 2004년 다시 찾기로 기약했던 것에 따른 것이다.

몇년만의 수영과 여름바다에 들어가긴 한 10년은 된거 같았다. 별로 더위가 피해지진 않았다. 살이 타서이다.

그래도 더위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뙤약볕 아래에서도 막상 몸을 담그면 차가운 동해의 수온 때문만은 아니었다.

급격히 깊어지는 수심으로 그 좁은 동해에서 한쪽을 차지하고서 친구들과 비치볼로 배구를 하며 비키니 아가씨들을 흘겨 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강하게 공을 받아쳐서 공은 저만치 날아갔다.

여름 아니랄까봐 마침 불어대던 남동풍이 불었고 관광객들을 막던 부표도 저만치 밀려나며 그 경계를 따라 비치볼은 저만치 떠내려 가고 있었다. 하필 바람이 불어 떠내려 가던 곳이 깊은 곳이라 해수욕을 하는 사람도 없고 풍향은 공과 나를 점점 갈라 놓고 있었다.

처음엔 수영을 하다가 문득 발을 뻗어보니 물이 턱밑까지 차 올랐다.
4000원과 목숨을 바꿀수는 없었기에 물속을 뛰어 공을 쫓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때면 짜짜짜자 짜장가의 엄청난 기운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한 아저씨가 깊은 물을 헤엄쳐 와서 공을 주워 나한테 던져주시며
'공 떠내려가는거 보고 반대편으로 뛰어가 건지러 헤엄쳐 온거에요. 한번 떠내려 가면 여간 잡기 힘든게 아니거든요.'라고 하시며 웃어 보이셨다.

난 그저 연신 고맙습니다 라는 말만 할뿐 달리 해드릴게 없었다.
꾸벅 인사한 후 경황이 없는 가운데 지친 다리를 끌고 저 멀리 친구들에게 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남의 일에 뛰어와서 깊은 물에 뛰어 드신 그 분이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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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동해의 수온보다 시원하고 확실한 피서였다.



- 2004년 8월 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