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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속의 창

조깅

부대에서 몇달째 저녁마다 연병장을 열바퀴에서 열댓바퀴씩 뛰고 있다.

처음에는 군살 좀 빼고 8월에 있었던 유격훈련을 준비하는 선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조깅에 중독이 되어 버렸다.

초중고땐 체력장에서 100미터는 내가 늘 반에서 7-8등 안에는 들었다.
근데 오래달리기는 뒤에서 7-8등이었다.
유연성이나 순발력은 좋은데 지구력은 꽝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와서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도 하다보니 지구력을 늘려보고 싶어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신문기사에서 조깅이 좋다고 써 있는걸 보고는 그날부터 저녁만 되면 뛰었다.

처음엔 5바퀴도 숨이 찼다. 하지만 그냥 뛰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1-2주가 지나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10바퀴도 가뿐해진 것이었다.

8월의 어느 무더운 일요일 오후였다. 휴일엔 오후에 뛰고 저녁에 쉬고는 했는데 그날은 햇살이 좀 강했다. 그래도 이미 조깅에 중독이 된지라 그냥 뛰었다.
10바퀴, 11바퀴... 그렇게 15바퀴 즈음 뛰려니 상황실에서 당직사령님이 날 보더니 이 더운날 뭐하냐며 깜짝놀라시면서 그만 뛸것을 지시하셨다.
신기한 건 그날뿐이 아니고 평소에도 연병장 옆에서 놀던 다른 병사들이 쉬어가며 뛰라고는 하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지 않고 땀만 조금씩 날 뿐이다. 15바퀴건 20바퀴건 뛰다가 지쳐서 그만 뛰는게 아니고 심심해지고 따분해져야 그제서야 멈춘다.

왜 그럴까...
아마도 조깅을 하며 군살이 빠지고 지구력이 늘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성취감과
뛰고 나면 웬지 모를 만족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참 개운하다.

간간이 다른 병사들도 저녁에 뛰는데 늘 나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하지만 난 적당한 속도로 뛰는 것을 좋아한다.
땅과 발이 닿는 감촉도 느끼고 저 멀리 동해에 어둠이 깔리는 것도 보며
나만의 여유속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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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휴가중에도 집에서 running-machine으로 매일 저녁 뛴다.
조깅은 계속 되어야한다. 주 욱~




- 2003년 9월 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