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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속의 창

웃음

웃음에는 알 수 없는 어떤 큰 힘이 있다.


저번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가니 며칠 후면 유격이라며 유격준비에 다들 밤늦도록 분주했다.

휴가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육군에서 가장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고 모든 군인들이 공통적으로 또 필수적으로 1년에 한번씩 받는 유격이라는 훈련을 나가게 되었다.

유격장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우선, 내 체력의 한계에 대해서 경탄하게 되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도 소리를 질러가며 이른바 '악으로 깡으로' 버텨 가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하루가 지나가며 5박6일간의 나의 첫 유격은 그렇게 깊어갔다.

당시 이등병 말호병이었던 나에겐 유격교관과 유격조교만이 아닌 고참들의 눈이 있어 정말 FM 그 자체로만 훈련에 임해야 했다.

그러다가 정말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경우가 있었다.
며칠간 정신 없이 피 튀기던 PT 체조를 하며 유격 코스를 도느라 이름도 모르는 강원도 고성군에 산골을 뛰어다니다가 다다른 곳이 외줄타기였다.

공중에 수평으로 주욱 뻗은 줄 하나가 낭떠러지와 그물만을 사이로 둔채 유격을 받으러 온 올빼미(올빼미는 유격장에서 유격을 받는 훈련자들을 지칭하는 말)들에게 한발은 아래로 뻗고 두팔과 한다리만 줄을 잡고 몸통을 외줄 자신에게 싣고서 앞으로 가라며 살벌하게 있는 곳이었다.

유연한 나였기에 중심을 잡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허나 체력을 탕진한 나는 중간 쯤 가니 더 이상 전진하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힘차게 '유격'이라는 구호를 크게 외치며 조금씩 전진했고 이윽고 강원도 산골은 '유으으으으우기이이억~'이라는 처절한 내 비명에 가까운 고함으로 메아리쳤다.

도하 완료지점에는 다른 중대에 소대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할 수 있다며 힘내라고 나를 격려해주셨다. 그에 힘 입은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전진을 하며 2-3m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목표를 눈앞에 둔 그 순간 갑자기 힘이 쭈욱 빠져나가버렸다. 그걸보신 소대장님께서는 줄에 매달린채 공중에서 잠시 쉬라고 하셨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서 힘겹게 전진을 하던 나에게 소대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자~ 한번 웃고 힘내 ^^ "

예전부터 잘 웃던 나는 그 순간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바보처럼 히죽~ 크게 미소를 지어보였고 소대장님도 함박 미소로 답해주셨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아주 큰 힘이 솓아났다.

비명에 가깝던 나의 '유격'구호는 우렁차고 절도있는 목소리로 바뀌면서 팔다리에 힘이 붙었고 나는 무사히 그날의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예전부터 생각하던 거지만, 힘든 순간에 바보처럼 아무생각없이 그냥 히죽 웃고 나면 그 미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것 같다.


웃음에는 알 수 없는 어떤 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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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장에서 다 좋았는데 워낙 惡을 쓰다보니 임맥을 다쳤다.
내겐 惡을 쓰는것보단 樂을 쓰는것이 더 맞는것 같다. ^^


- 2002년 7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