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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속의 창

철학

DAUM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니 철학 입문서인 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作)에 철학에 관한 질문이 있길래 답해보았다. 참고로 소피는 16살 먹은 독일 여자애 이름이다.




1. 나는 누구인가?
---> 나는 하대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인간들이 우리은하라고 부르는 태양계에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들이 대한민국이라고 규정한 곳에 국적을 둔 남자라는 몸으로 숨을 쉬고 있다.



2. 철학이란 무엇인가?
---> 철학이란 모든 학문의 기초이자 모든 학문의 시작이자 모든 학문의 과정이자 모든 학문의 도달점이다. 존재 또는 여러 현상에 대한 고찰에 의하여 천문학, 수학등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사고현상을 통해 예체능 또한 이루어 졌고 인간의 모든 학술적 활동은 사고를 하는 '철학적 행위'에 기초를 둔다.
고로 철학은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대전제이다.


3.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관심을 가질 그 무엇이 존재하는가?
--->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평화나 음악 같은것도 좋겠지만 일단 자연의 대법칙에 반드시 따를수 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1차적이고 섹스나 식욕 수면욕이 그 다음을 따른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하나의 과정의 연속상에 있는 한 현상에 대한 두가지 흐름이라는 사실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낀 흔히들 말하는 깨달은 자에게는 삶과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떠한 것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다만 보여지는 현상일뿐이다.



4. 이 세상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우리는 모든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 있다. butterfly effect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묶여있다. 사람 하나가 일으키는 물리학적인 현상들뿐만이 아니라 그가 발산하는 뇌파 역시 이 우주에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5.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라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기초적인 질문이다. 나에 대한 정립없이는 숨을 쉬고 있는 주체가 과연 나인가 내가 과연 누구의 자식인가에 관한 끊임없는 회의끝에 데카르트의 사유 제1법칙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생각하는 자신의 존재만큼은 확실하다는, 더 정확히 말해 확실한 것은 그것 뿐이라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그게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처럼 당연하게 나는 나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눈뜬 장님이 되고 만다.


6.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얻는 사람도 더 필요한 무엇이 있을까?
---> 자기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나 다 얻은 사람에게는 더 필요한것이 없다. 道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죽음을 막기위한 나머지 삶이라는 시간조차도 필요하지도 불필요하지도 않다. 그는 이미 삶과 죽음같은 본질적인 문제에서조차 벗어나 있으니까.

7. 우주, 지구 그리고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다고 생각하는가?
---> 모른다.
물론 시작은 빅뱅이다. 그러나 빅뱅이 어떻게해서 생겼는지는 모른다. 아무도 본적도 볼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못 볼것이다. 다만 느낄수 있을 뿐이다.


8. 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산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죽지 않는것이 잘 사는 것일것이다. 그 발버둥 가운데서 자신의 삶 만을 위한것이 아닌 남은 물론이거나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자세로 죽음에 다가간다면 영혼이 조금은 기뻐하지 않을까


9. 동물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우리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 인간의 대뇌는 가장 안쪽에서부터 뇌간, 구피질, 신피질순으로 발달되어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것은 신피질이 발달하여 높은 IQ를 발휘할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IQ가 자신이 살아있다고 증명시켜주고 인지시켜주는 것이아니다. 생각이나 할줄 알까하는 조그마한 동식물 조차도 위험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인간들과 인간들이 미물이라고 부르는 그 존재들에 차이가 있다면 사고의 범위이다. 하지만 근본은 같다. 하늘아래 유기체이다.

10.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삶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로 분리하여 대립구도로 몰아붙이면 절대 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연장선상에 놓아버리면 삶과 죽음은 같은 말이되고 위의 질문은 모순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한정해서라는 전제를 준다면 삶이라는 단어를 규정할 수는 있다. 그럴 경우에는 그 단어에 관해서 이야기 하면 될것이다.

11. 죽음 뒤에도 삶이 있을까?
--->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가? 영생말인가? 윤회말인가? 당신 죽어보았나? 나는 1981년에 태어난 이래 한번도 죽어본적 없다.
가끔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사망판정을 받고 실제로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하다.
죽음을 삶에 반대의미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고수된다면 죽음은 삶에 종지부를 찍어주는 말이된다. 그리고 늘 끝은 또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그 또다른 시작이 삶인지 영원한 소멸이라는 말 그대로의 죽음인지 궁금하다면 너무 서두르지 말고 나중에 눈감을때 잘 지켜보라.

12. 인간의 존재에 끝이 있을까?
---> 그럼 시작은 어디인가? 질문이 잘못되었다.


13. 인생이란 무엇일까?
---> 사람의 생이다. 쥐의 생도 아닌 사람의 생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속에서의 삶을 살아가는것이 인생이다. 물론 짐승들에게도 사회성이라는 것이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인간의 사회가 있고 그 사회속에 삶인 인생이라는 것에 정답이 따로 있겠는가만은 그 사회속에서 순작용을 하는것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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哲學. 사리에 밝은 학문. 마음에 든다.



- 2001년 12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