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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속의 창

질주

지난 11월에 강원도에서 2년마다 하는 군단급 훈련인 호국 훈련이 있었다.

워낙 규모가 크고 강원도가 움직이는 훈련이다보니 지방뉴스에서는 연일 호국 훈련이라는 훈련 상황이니 총 소리가 나고 탱크가 지나가더라도 경찰에 신고 하지 말것을 당부하는 보도가 이어졌었다. 외국군에서도 참관하러 많이들 왔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강원도 기갑 부대에 있다보니 평소 내가 타는 M48A3K 전차를 타고 스피드를 낼 기회가 잘 없다.
최고 시속이 48Km이긴 한데 부대 주변이 2차선 도로인데다가 비포장을 달릴때도 많았다.
처음 자대를 왔을때는 전차의 체감속도가 워낙 커서 시속 15Km에도 초긴장을 하여 조종을 했었다. 그땐 승용차로 160Km로 달리는 것보다 몇 배나 빠르게 느껴졌다.

이번엔 부대 맨 선두 차량의 조종수로 훈련을 뛰게 되었다.
훈련 마지막 날이자 내 말년휴가가 100일 남았던 날 겨울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때 부대로 복귀하며 좀 밟아 보았다.
짬밥도 되고 병장이고
비가 오니 얼른 복귀하자 싶고
언제 또 이렇게 폭 넓은 X번 국도를 부대 최고 선두에서 달릴까 싶고 해서
최고 시속 48Km인 차를 빗속을 뚫고 40-43으로 계속 달리고 달렸다.
와우~

내가 조종하는 311호 전차 뒤로는 수 많은 다른 전차와 장갑차들, 구난전차, 기계화 보병을 실은 2 1/2 차량들이 내 속도를 맞추기 위한 행렬이 국도에서 장관을 펼쳤다.

미군이 올해에 이라크를 침공할때 처음 몇일간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40Km대로 지상군이 움직여 나시리아를 향했다고 군사 전문가들이 흥분했었는데... 훈련 상황이긴 하지만 나도 해냈다.
아마 미국 군사위성이 우리 전차부대의 이동을 잡아내고는 놀랐을 것이다.

더욱이 그 기종은 미국에서 도태시킨지 20년 가량 되는것이니...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좋아 그 오래된 장비를 잘 관리하고 정비하고 운용을 한다는 뜻이겠지?

군대에 끌려왔다고 생각하는 주위의 몇몇 얘들은 일과가 끝나고 저녁에 부대 안에 있는 당구장, 노래방을 가거나 P.X를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하는데, 난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전차를 정비 하거나 전차를 타고 움직이면 몸과 마음이 뻥 뚫려 생쾌해지곤 했었다.
공돌이라서 그런가 @.@?

그 질주는 나에게 희열을 넘어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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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X라서 나는 안 나가도 되었는데 자원해서 뛴 훈련이었다. 그리고 내 선택은 정말 옳았다.


- 2003년 12월 1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