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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속의 창

수해1 - 처절한 밤

이건 실화다. 내가 직접겪은.


2002년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흐렸다. 비도 자주왔고 태풍도 여럿 있었다. 8월말경에 라마순이라는 태풍이 올라왔다. 경남 김해시등 남쪽에 비를 뿌려 피해를 주더니 그 녀석이 준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강원도를 비롯하여 전국은 15호 태풍 루사를 만났다.

8월의 마지막날 강원도를 지나간 루사는 강원도를 물에 넣었다가 꺼내놓았다.
하루 강수량 : 870.5mm
참고로 그 동네 연간 강수량이 1400mm이다. --+
하룻동안 말도 안되는, 기상관측이래 최악의 비가 내렸다.


<8월31일 저녁 6시 부대>
당직사관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기예보를 비롯하여 현재 내리는 비의 추이를 볼때 오늘밤이 고비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재해대책반이 소집되어 병사들은 우의를 입고 한 손에는 손전등은 다른 한 손에는 삽을 들고서 너무 세차다 못해 아프기까지한 루사의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저녁 9시55분>
곧 취침시간인데 계속 교대를 해가며 재해대책반이 운용되고 있다. TV에서는 최악의 사태가 우려된다며 난리이고 병사들은 집에 전화를 걸어 아무일 없느냐고 확인을 하고 분주했다.

<저녁 10시 20분>
교대를 하고서 쉬러 온 재해대책반원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난 불침번 초번초였다. K2를 메고서 내무실을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중대의 총원이 54명인데 자고 있는 사람은 절반도 채 되지 않고 모두 밖에 나가 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저녁 10시30분>
옆 중대가 재해대책반을 운영하던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처참한 절규였다. 그 세찬 비소리를 뚫고 내무실까지 들리던 비명과 함께 우리 중대원들이 비에 흠뻑 젖은 채 모두 내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우리 중대원들이 산 아래에서 자루에 흙을 담아 빗길을 바꿔놓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근데 분명 번개는 치지 않았는데 천둥소리는 순식간에 점점 커지면서 멈추지 않고 굉음으로 변했다고 한다.
작업을 지휘하시던 우리 행정보급관님은 군인 특유의 육감으로 이상을 감지하고 그 즉시, 근처 초소에 보초들까지 모두 피신을 할 것을 명령하고 모두 정신없이 뛰어 내려왔다.

<저녁 10시 40분>
그것은 산사태였다. 너무나도 엄청난.
우리 중대원들은 무사히 피했지만 그 아래편에서 작업을 하던 옆 중대 재해대책반원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산사태에 떠밀려 허우적대다가 같이 떠내려오던 뿌리뽑힌 나무와 돌에 부딪히고 긁혀서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잠시후 옆 중대원들이 내무실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의무병을 부르는 외마디 비명이 넘쳐났고 자신이 다친지도 모른채 피에 흥건히 젖어서 절뚝대며 건물로 들어오는 병사들도 여럿 있었다.

<그 다음날 새벽 01:20>
우린 모두 막사안에서 대기할것을 명령 받은채로 자리에 앉아 숨을 죽였다.
이미 전화도 전기도 물까지 끊어졌다.
갑자기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 우리 부대를 외부와 연결하는 다리 2개가 모두 끊어졌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누군가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동통신마저도 두절된 상태였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린 우리가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새벽 01:40>
지쳐있던 우리는 일단 잠자리에 들것을 지시 받았다.

<아침 07:00>
일요일이라 7시 기상이었다. 하지만 스피커에서 늘 나오던 기상 나팔소리는 없었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산에서 밀려내려온 토사들과 부러진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뒹굴고 있었다. 두개의 연병장은 사라지고 차들은 흙속에서 지붕만 내밀고 있었다.

더 압권인것은 우리 중대 주차장이었다. 탱크보다 더 큰, 정말 집 한채보다 더 큰 암석과 그보다 조금 작은 암석 하나가 산에서 굴러내려와 있었고 바위들이 굴러 내려온 자리에는 산에 큰 계곡들이 생겨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어떤 건물은 벽을 무너뜨리고 흙이 들어와 1층이 완전히 더러워져 있었다.

<아침 08:00>
아침을 허둥지둥 먹고서 병력들이 부대 복구에 투입되었다.



- 2002년 10월 29일 -